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말은 침묵 속에 가라앉아 망각된다. 그리고 그 망각은 용서를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언어의 구조 속에 사랑이 짜여져 들어 있다는 한 표시이다. 말은 인간이 망각 속에서 용서까지 하도록 인간의 망각 속으로 가라앉는다.
말의 사라짐, 즉 망각은 또한 죽음을 준비한다. 인간을 비로소 인간이 되도록 하는 말이 사라지듯 인간 자신도 사라지고 소멸한다. 언어의 구조 속에는 죽음도 짜여져 들어 있다.
오늘날 말은 망각을 빼앗긴 것 같다. 모든 말들이 인간을 온통 둘러싸고 있는 잡음어의 수중에 들어 있다. 모든 것이 일반적인 잡음어 속에서 계속 솟아오르고 사라진다. 모든 것이 일반적인 잡음어 속에서 동시에 존재하고, 그러면서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말의 현존도 없고 망각도 없다. 이제는 더 이상 직접적으로 인간에 의해서 망각되는 것이 아니라, 망각은 인간 밖으로, 일반적인 잡음어 속으로 이전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망각이 아니며 다만 잡음어 속으로 사라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제는 용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라져버린 바로 그것이 언제나 또다시 잡음어 속으로부터 떠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 사물 혹은 한 말에서 해방되지 못하며 또한 한 사물 혹은 한 말을 결코 소유하지도 못한다. 현대인의 신경과민은 거기에서 비롯된다.